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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엄중한 시국에 제대로 자충수를 뒀다. 국가적 대혼란을 야기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파동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탄핵이든, 하야든, 임기단축 개헌이든 5년 임기를 다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이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상황 판단력을 보인 만큼 물러나는 게 순리지만 그래도 따져봐야 할 것은 적지 않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곱씹어볼 게 몇 가지 있다는 생각이다.

첫째, 두 번의 탄핵은 절대 우 차량 유지비 계산 연이 아니다. 좌우를 떠나 국가수반으로서 국민 상당수의 존경을 받는 리더는 많지 않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 그래도 대부분의 대통령은 임기를 무난하게 마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보수 정권에서만 두 번째 낙마자가 나오기 직전이다. 정치적 결사체로서 보수 정당의 구심력이 상대적으로 훨씬 느슨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한지우 어렵다. 똘똘 뭉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 자중지란을 일삼은 결과가 뒤늦게 시대착오적인 계엄령 파동으로 나타났다는 생각이다.
만약 총선에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합심했다면 적어도 의회 균형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의 의회 폭주에 국정이 휘둘리는 일은 원천적으로 없었을 테다. 이제 ‘실력(능력) 있는 채움모기지 보수’라는 클리셰는 박물관 유물처럼 박제되는 게 맞아 보인다.
둘째, ‘우리 안의 윤석열’을 살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도드라진 캐릭터는 옹고집이다. 이런 옹고집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얘기만 취함으로써 더 심각해진다. 옹고집 성향이 강한 사람이 확증편향에 빠지면 답이 없다.
계엄령 파동에서도 충암고 선후배 중심으로 9급공무원 대출 뭉쳤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전공의 파업, 김건희·명태균 사태의 해결책을 구할 때도 그의 고집은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문제는 인내심이 약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윤 대통령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다.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는 정권 퇴진을 부르짖는 완장 찬 사람들이 ‘탄핵 찬성 모기지론 이냐’ ‘반대냐’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탄핵에 목소리를 주저만 해도 즉시 ‘반(反) 민주주의자’로 낙인 찍는다. 중요한 결정에 응당 필요한 숙고의 과정을 생략하는 좌파식 매카시즘이 우려스럽다.
셋째, 이번 사태가 민주당이 그간 자행했던 반민주 폭거를 가릴 수는 없다.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기에 이 자체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잡은 이 대표도 이번 사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이 대표 재판 건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아 왔다. 사드 배치 지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사로 감사원장을, 이 대표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숱한 검사를 탄핵한 게 민주당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탄핵이 남발돼 왔는데 이는 삼권분립을 뒤흔드는 처사다. 우리 사회가 탄핵의 무게감에 둔감해진 데는 민주당의 탓이 크다. 경제가 어렵다면서 감액 예산을 밀어붙였고, 반도체 입법 같은 절체절명의 입법을 뒷전으로 밀어버린 것도 민주당이다. 예산 폭주에 수틀리면 탄핵 남발로 국정 마비를 조장한 이 대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다’는 사람이 괜히 늘어나는 게 아니다.
넷째, 권력 향배만 집착했다가는 참혹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는 점도 꼭 지적하고 싶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대표만 해도 내년 5월 대선이 관철돼야 사법 리스크를 싹 지울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가 탄핵에 묻히고 있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정책 대응, 끝나지 않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북러 결탁으로 더 꼬인 한반도 함수, 금융·자본 시장 혼란, 내수 침체로 파탄 일보 직전인 자영업 등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이런 사고무친 상황에서 면밀한 준비 없이 권력만 탐했다가는 누가 잡든 후일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미증유의 경제난에 최대 정치 위기까지 겹쳐 수시로 얼굴색을 바꿀 수 있는 여론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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