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 "의사들이 환자 두 번 죽인다"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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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비한 작성일20-10-10 19:04 조회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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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의대 정원 확대 등 정책에 반대한 의료계가 지난 8월7일부터 약 한 달 간 수차례에 걸쳐 집단휴진(파업)을 벌였습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건 바로 전공의들인데요. 전공의는 6년간의 의대 예과·본과 과정을 거쳐서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대형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수련생 신분으로 일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합니다.
의사 파업이 남긴 상처는 매우 컸습니다. 대형병원의 핵심 의료인력인 전공의들이 일제히 진료를 거부해, 중증·기저질환으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수술이 줄줄이 밀렸습니다. 코로나19로 쉽사리 입원도 못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원당해 병원을 떠도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부산에선 40대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3시간 동안 전전하다 끝내 숨지기도 했죠.
2000년 9월21일 ‘의사파업에 따른 치료지연 암환자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00년 10월10일 “의사들이 환자 두 번 죽인다”
의사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년 전 오늘도 의료계 파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의료계 총파업으로 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진 환자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동네 병·의원 진료에도 차질이 생겨 감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걱정한 시민들이 너도나도 독감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보건소에 몰려들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2000년 파업은 ‘의약분업’ 도입을 놓고 벌어졌습니다. 의약분업은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게 하는 제도인데요. 지금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 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의약품 조제를 맡길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의사들은 2000년 4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파업을 벌였습니다. 4월 1차 파업에는 전국 개원의가, 6월에는 개원의, 병원 보직의, 전공의 등이, 8월에는 전국 의료기관에서, 9월에는 의대 교수까지, 10월에는 1·2·3차 의료기관이 모두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4~5차 파업 사이 보건복지부가 약사법 개정을 놓고 “의료계와 약사계가 참여하는 ‘의·약·정 협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참여를 거부하고 10월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러는 사이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피해는 커졌습니다. 경향신문이 2000년 10월9일 인터뷰한 이동안씨 가족들은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의사들을 원망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그해 6월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방간 때문에 인천의 한 병원에서 4~5년 동안 정기 검진을 받아온 이씨는 의사에게 수차례 가슴 통증을 호소했지만 병원 측은 “가슴에 담이 있으니 파스나 사서 붙이라”고 했습니다. 이씨의 요청으로 CT 촬영을 한 결과 폐암 말기가 확인됐습니다.
이씨 가족들은 부랴부랴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파업으로 그해 7월 1차 항암치료만 받고 퇴원해야 했습니다. 2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8월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병원에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치료 일정을 미뤘습니다.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던 이씨는 9월 병세가 악화되고 맙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지만 이미 암세포는 식도와 기도, 심장, 머리까지 번진 뒤였습니다. 항암치료조차 받지 못할 지경이었죠.
이씨 가족들은 당시 파업 중이던 의료계에 일갈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가장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려는 가족의 몸부림과 소망을 의사들이 과연 헌신짝 버리듯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요.
10월 총파업에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도 참여하면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맞기 위해 서울시내 25개 구청 보건소에 노인과 만성질환자 수천여명이 몰려든 겁니다. “동네 병원과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힘든 상태에서 독감에 걸리면 큰일”이라면서요.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그달 9일 은평구청 보건소 앞엔 오전 6시부터 2000여명이 줄을 섰습니다. 출근시간대인 오전 9시쯤에는 접종을 맞으려는 줄이 구청 밖 50m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구청 측은 그날 1400여명만 백신을 접종하고 나머지 주민들에겐 번호표를 나눠줘 이틀 뒤까지 추가 접종을 했다고 하네요.
2020년 8월24일 김용민의 그림마당
20년 전에도, 올해도 의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걸 우리 모두 느꼈습니다. 2000년 의사 파업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장애가 생긴 사례도 있습니다. 그해 10월 당시 2살이었던 박모군은 장중첩증으로 경북 포항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측은 의료진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고, 박군은 2시간쯤 떨어진 대구의 한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뒤늦게 수술은 받았지만 간질, 언어장애, 정신지체 등을 앓게 됐습니다.
2005년 8월21일 대구지법 민사11부(재판장 이영화)는 포항의 병원에 대해 박군과 박군 가족에게 5억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박군은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죠.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요. 시민의 생명을 볼모로 파업을 벌이는 일이 이젠 더 이상 없길 바랄 뿐입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 장도리
[경향신문]
의대 정원 확대 등 정책에 반대한 의료계가 지난 8월7일부터 약 한 달 간 수차례에 걸쳐 집단휴진(파업)을 벌였습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건 바로 전공의들인데요. 전공의는 6년간의 의대 예과·본과 과정을 거쳐서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대형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수련생 신분으로 일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합니다.
의사 파업이 남긴 상처는 매우 컸습니다. 대형병원의 핵심 의료인력인 전공의들이 일제히 진료를 거부해, 중증·기저질환으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수술이 줄줄이 밀렸습니다. 코로나19로 쉽사리 입원도 못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원당해 병원을 떠도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부산에선 40대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3시간 동안 전전하다 끝내 숨지기도 했죠.
2000년 9월21일 ‘의사파업에 따른 치료지연 암환자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00년 10월10일 “의사들이 환자 두 번 죽인다”
의사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년 전 오늘도 의료계 파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의료계 총파업으로 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진 환자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동네 병·의원 진료에도 차질이 생겨 감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걱정한 시민들이 너도나도 독감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보건소에 몰려들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2000년 파업은 ‘의약분업’ 도입을 놓고 벌어졌습니다. 의약분업은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게 하는 제도인데요. 지금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 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의약품 조제를 맡길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의사들은 2000년 4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파업을 벌였습니다. 4월 1차 파업에는 전국 개원의가, 6월에는 개원의, 병원 보직의, 전공의 등이, 8월에는 전국 의료기관에서, 9월에는 의대 교수까지, 10월에는 1·2·3차 의료기관이 모두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4~5차 파업 사이 보건복지부가 약사법 개정을 놓고 “의료계와 약사계가 참여하는 ‘의·약·정 협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참여를 거부하고 10월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러는 사이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피해는 커졌습니다. 경향신문이 2000년 10월9일 인터뷰한 이동안씨 가족들은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의사들을 원망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그해 6월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방간 때문에 인천의 한 병원에서 4~5년 동안 정기 검진을 받아온 이씨는 의사에게 수차례 가슴 통증을 호소했지만 병원 측은 “가슴에 담이 있으니 파스나 사서 붙이라”고 했습니다. 이씨의 요청으로 CT 촬영을 한 결과 폐암 말기가 확인됐습니다.
이씨 가족들은 부랴부랴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파업으로 그해 7월 1차 항암치료만 받고 퇴원해야 했습니다. 2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8월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병원에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치료 일정을 미뤘습니다.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던 이씨는 9월 병세가 악화되고 맙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지만 이미 암세포는 식도와 기도, 심장, 머리까지 번진 뒤였습니다. 항암치료조차 받지 못할 지경이었죠.
이씨 가족들은 당시 파업 중이던 의료계에 일갈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가장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려는 가족의 몸부림과 소망을 의사들이 과연 헌신짝 버리듯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요.
10월 총파업에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도 참여하면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맞기 위해 서울시내 25개 구청 보건소에 노인과 만성질환자 수천여명이 몰려든 겁니다. “동네 병원과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힘든 상태에서 독감에 걸리면 큰일”이라면서요.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그달 9일 은평구청 보건소 앞엔 오전 6시부터 2000여명이 줄을 섰습니다. 출근시간대인 오전 9시쯤에는 접종을 맞으려는 줄이 구청 밖 50m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구청 측은 그날 1400여명만 백신을 접종하고 나머지 주민들에겐 번호표를 나눠줘 이틀 뒤까지 추가 접종을 했다고 하네요.
2020년 8월24일 김용민의 그림마당
20년 전에도, 올해도 의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걸 우리 모두 느꼈습니다. 2000년 의사 파업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장애가 생긴 사례도 있습니다. 그해 10월 당시 2살이었던 박모군은 장중첩증으로 경북 포항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측은 의료진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고, 박군은 2시간쯤 떨어진 대구의 한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뒤늦게 수술은 받았지만 간질, 언어장애, 정신지체 등을 앓게 됐습니다.
2005년 8월21일 대구지법 민사11부(재판장 이영화)는 포항의 병원에 대해 박군과 박군 가족에게 5억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박군은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죠.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요. 시민의 생명을 볼모로 파업을 벌이는 일이 이젠 더 이상 없길 바랄 뿐입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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