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최후..
페이지 정보
작성자 89o2h263 작성일19-06-04 15:42 조회37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촉 멸망 이후 종회는 강유를 열렬히 환영하며 강유의 수레와 깃발 등을 돌려주고 항상 함께 다니며 강유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종회가 강유에게 항복을 받을때
"왜 이리 늦은 거요?”라고 말하자 강유가 정색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사람을 오늘 보는 것만도 빠른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종회가 그를 매우 높게 여기며 상당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이후 강유는 종회에게 딴 마음이 있음을 알아채고 촉나라 부흥에 이용할 목적으로 종회를 회유하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에 바람을 더 넣었다.
"듣건대 군께서는 회남에서부터 그 계책에 허점이 없었다고 합니다.
진나라가 창대해진 것은 모두 그 덕택입니다. 이렇게 촉나라까지 정복하여 그 위엄과 덕망이 세상에 진동하니 백성들은 그 공을 존경하고 군주도 그 지모를 두려워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어찌 이대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한신은 한나라를 배반하지 않았어도 천하가 평정되자 의심을 받았으며 문종은 범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가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었겠습니까? 이해관계가 그런 겁니다. 군께선 이미 엄청난 공과 덕을 이루셨으니 범려가 배를 띄워 월왕 구천을 떠난 것을 본받아야지 않겠습니까? 공훈과 몸을 보전하려면 아미산에 올라 장량처럼 신선 적송자를 따라가야지 않겠습니까?"
종회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심오하여 내가 능히 행할 수 없소. 또한 지금을 위한 방도로 혹 아직 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소"
강유가 말했다,
"그 나머지 방도야 그대의 지력으로 능히 헤아릴 수 있으니 이 늙은이가 번거로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264년 정월, 종회는 강유의 본심도 모르고 등애를 참소하였고 강유의 계획에 방해가 될 등애는 체포되어 중앙으로 압송되었다. 이로인해 종회는 강유 등을 거느리고 성도로 가서 익주목을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키고는 강유에게 군사 5만 명을 주어 그를 선봉으로 삼으려 하였다. 한편, 등애가 불순한 마음을 품었다는 얘기를 듣고 종회도 믿을 인간이 못되는 걸 아는 사마소는 촉 지방의 정세가 심상찮음을 감지하고 병사 10만을 장안으로 보내 대비하게 했다.
그리고 강유를 비롯한 촉장들은 종회로부터 옛 촉한군의 인호절개(지휘권한)을 돌려받았고 마침내 264년 정월 15일에 종회가 곽태후의 유명을 날조해 사마소 토벌을 천명하고 위장들을 모조리 가둔후 자신이 아랫사람에게 의논을 끝내게 한 뒤 목판에 쓴 증서로 관직을 임명하였으며, 또 신임하는 사람들을 파견하여 각 군대를 대신 관리하도록 하여 촉을 장악하는 난을 계획한다. 강유의 계획은 이후 '밖에 있던 옛 촉한군 병력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산장으로 삼은 다음 수천개의 곤(몽둥이 비스무리한 타격무기)등의 무기로 차례대로 위장들을 살해해 미리 파놓은 큰 구덩이로 던진다'는 계획으로 종회가 짠 계획을 역이용해 마침내는 종회도 죽이고 위나라 장수들과 병사들도 이런식으로 다 제거한 다음 유선을 복위시킬 계획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강유는 종회에게 먼저 위나라 장수들을 죽이도록 가르쳤고, 이를 통하여 종회를 죽인 후 위나라 병사들을 다 파묻어버리고 촉한을 부흥시킬계획을 준비한다. 강유가 외부의 병사들을 다 불러 동원해 수천개의 많은 무기를 준비하고 강유가 촉병 등을 동원하여 위나라 장수들 뿐만 아니라 종회의 측근들과 상관들을 잃고 혼란에 빠진 위나라 군졸들까지 한꺼번에 기습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종회로부터 촉한군의 지휘권한까지 되돌려 가진 상태였다. 따라서 종회가 강유에게 줄 5만의 병력은 구 촉한군일 가능성이 높고 지휘관들이 다수 죽어 혼란에 빠진 위군을 공격해 섬멸하려 했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것이 종회에게 언급한 촉을 회복하는 계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채 종회는 위장들을 다 주살하라고 한 강유의 말을 따르고자 했지만 미적거리면서 결단하지 못했다. 그 사이 갇혀있던 호열이 종회의 신임을 받던 구건을 통해 이 계획이 담긴 밀서를 그의 아들 호연에게 몰래 전했고 이 사실이 하룻밤 사이에 위군 전체에 전달된다. 18일, 호연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출진하자 남아 있던 위나라 장졸들이 지휘하는 자가 없어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출진해 (자신들을 죽이려던 강유와 종회를 죽이러) 성도로 너나없이 몰려들었고 마침 무기를 배분하던 중인 종회와 강유를 습격하였다.
당시 종회와 강유는 휘하 병사들에게 무기를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위군이 몰려들자 강유는 종회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저항했다. 당시 63세였던 그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종회의 말에
"오직 마땅히 공격할 뿐이오!"
라 말한 뒤 몰려든 병사들을 상대하여 직접 대여섯 명을 죽이며 분전했고 그 사이 종회는 병사를 파견하여 붙잡혀 있는 아문과 군수를 죽이도록 했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기물을 들어 문을 부수고, 사병들은 대문을 부수었으므로 격파할 수 없었다. 곧 성문 밖에서는 사다리에 의지하여 성이 어지럽게 진입하였고, 쏘아대는 화살은 비오듯 했으며, 아문과 군수들은 각기 흩어져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서 그들의 부하 병사들과 합류했다. 결국 강유는 병사들과 결투 끝에 살해되고 종회도 더불어 살해된다. 강유의 시신은 죽은 뒤 쓸개가 꺼내어져 그 크기가 한 되가 될 정도(담낭에 문제를 달고 살았던거로보임)로 위군에 의해 참혹하게 훼손되었다.
(출처 꺼무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