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맥도날드 없어도 잇몸으로 버티는 러 '푸티니즘'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아이폰14이 9월에 출시되면 한 달쯤 걸려 오는 10월에 구할 수 있을 겁니다."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트베르스카야 광장 거리에 있는 한 휴대폰 매장 직원은 아이폰14을 구입 가능하냐고 묻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이 매장에는 알파인그린 색상의 아이폰13 프로와 프로맥스가 전시돼 있었다. 알파인그린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애플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한 뒤 나온 색상이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공습 이후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잇따라 철수했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사례다.빗나간 전망들, 푸틴 "경제전문가에 일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예상 외로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제재를 쏟아붓고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에도 러시아의 실물 경제가 받는 타격은 당초 예상했던 것에 비해 덜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80%라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전쟁을 이끌어나가고 있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6개월인 지난 23일(현지시간) 동시에 ‘러시아 경제가 기대를 넘어서는 이유’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서방의 제재와 주요 기업들의 잇단 철수가 러시아 경제에 일부 타격을 주긴 했지만 단기적으로 볼 때붕괴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마다 평가가 다소 엇갈리긴 하지만 전쟁 초기 러시아 경제가 급속히 심각한 침체기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경제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현재활동지수(CAI)를 보면 러시아 지수는 전쟁 초반인 지난 3~4월 급격하게 하락했지만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미국과 독일 경기가 주춤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도 6월 러시아 산업 생산이 1년 전보다 1.8％ 줄었으나 심한 불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경기가 저점을 찍은 뒤에는 전력 소비가 다시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물가도 연초부터 지난 5월 말까지는 크게 올랐지만 이후 안정을 찾고 있다. 오히려 제재를 가했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스페인 IE비즈니스 스쿨의 막심 미로노프 이코노미스트는 WP에 "제재가 확실히 효과가 있긴 했지만 6개월 전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디다"고 평가했다.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이 경제 정책을 전문가에게 완전히 일임하고, 전쟁 이전에 러시아 경제를 서방과 꽤 분리하려 했던 것이 비교적 제재에도 잘 버티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또 러시아가 유럽에 아직 에너지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 러시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러시아 경제에 추가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유럽이 에너지 수입을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서방기업 철수 뒤 러시아제와 병행수입이 대체



[이미지출처=연합뉴스]러시아에서 철수한 서방 기업의 사업체를 그대로 인수받아 운영하거나 병행수입으로 이들 제품을 들여와 빈자리를 속속 채우고 있는 것도 경제 붕괴 속도를 늦추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글로벌 외식 브랜드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었지만 현지 업체가 이를 인수, 각각 ‘브쿠스노 이 토치카’와 ‘스타스’라는 이름으로 간판만 바꿔 영업을 하고 있다.또 서방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을 공식 무역 루트로는 받을 수 없지만 우회로를 거쳐 구입하고 있다. 아이폰과 함께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의 제품을 카자흐스탄을 통해 사와서 수수료를 얹어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DW)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정부는 지난 5~7월 중 러시아의 병행수입 규모를 60억달러(약 8조원)로 집계했다. 이 규모는 연간 1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CNN방송은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은 전쟁의 피해로부터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에서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면서 경제적 측면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관료들이 수년간 수입 대체 방안 마련과 금융 고립을 피하기 위한 지급 결제 시스템 개발 등을 통해 러시아 경제가 제재에도 견딜 수 있도록 작업을 해왔다고 설명했다.다만 일각에서는 "러시아 경제의 회복력과 번영을 언급하며 서방에 타격이 되는 경제 소모전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기업의 철수 상황을 꾸준히 살펴온 예일대의 제프리 소넌펠드 교수는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상품시장에서 주요 수출업자로서의 전략적 위치 손상 △무역 붕괴에 따른 수입 타격으로 공급 부족 사태 확산 △제품과 인력 대체 능력 부족 △외국인 투자 실종 △지속 불가능한 재정·통화정책 개입에 의존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