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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교사
서귀포 표선읍 한모살. 4.3사건 때 중간산 마을에서 군인들에게 떠밀려 해안가 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이 총살당했던 공간이다. 쓰러진 시체는 바다에 던져 버렸다. 4.3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없다면, 그저 비어있는 땅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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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
한날한시에 마을주민 쓰러진 ‘옴팡밭’
그 당시 일주도로변에 있는 순이 산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 lg 통신요금 섯개에는 죽은 시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순이삼촌> 中
소설 ‘순이삼촌’ 표지
[헤럴드경제(제주·서귀포)=박준규 대학생 기자] 4·3사건에서 중산간 일대 주민들이 많이 희생됐지만 사태가 진행될수록 바닷가 마을도 큰 상처를 입었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가 대표적인 동네다. 이곳은 지금 ‘너븐숭이 4·3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너븐숭이는 ‘넓은 바위가 있는 곳’을 뜻한다. 마을주민들이 밭일을 하다가 한숨 돌리던 공간이었다.
북촌리 너븐숭이에선 1949년 1월, 주민 46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일이 터지기 얼마 전 북촌리와 이웃한 구좌읍 동복리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토벌대는 보복을 명분으로 애꿎은 북촌리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모이게 한 뒤 학살했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마을사람들의 시체가 일주도로 주변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란 뜻)에 널렸다고 한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은 이 북촌의 비극을 모티브 삼아 쓴 소설 ‘순이삼촌’을 1978년 발표했다. 마을 대부분이 불에 타고 이웃들이 한날에 목숨을 잃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썼다. 정부는 지난 2008년 북촌리 땅 일부를 매입해 ‘순이삼촌 문학비’를 세웠다. 비석들이 땅바닥에 모로 쓰러진 형태로 조성된 공간이다. “학살 당시 숨진 피해자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양성주 대표가 말했다.
1949년 1월 북촌리 대학살이 벌어진 조천읍 북촌리의 한 옴팡밭. 이곳에서 집단으로 목숨을 잃은 주민들을 기리는 비석들이 놓여 있다. 쓰러진 주민을 상징한다. [박준규 기자]
당시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어린이나 갓난아기들이 묻힌 ‘애기무덤’도 옆에 있다. 간신히 살아남은 주민들은 어른의 시신은 수습해 다른 곳에 안장하고 아이 시신은 임시 매장 형태로 뒀다. 그 상태로 수십년이 지나서 20여기의 무덤군(群)이 됐다. 양 대표가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대학살에서 희생된 어린이가 묻혔다”고 말할 때 학생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북촌리 애기무덤. 1949년 초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 때 사망한 어린 아이들을 임시 매장한 묘다. 20여기의 무덤이 있다. [박준규 기자]
서귀포 백사장의 비극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제주의 실제 동네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는 대신 ‘P읍’이라고 적었다. 이곳은 서귀포 표선읍으로 알려졌다. 4·3사건 때 제주의 남쪽에서도 희생자들이 잇따라 나왔다. 표선읍에서도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됐다.
그럼,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어.
<작별하지 않는다> 중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백사장은 ‘한모살’을 일컫는다. 표선도서관 바로 옆, 지금은 들풀만 가득한 공터다. 표선해수욕장에서 50m쯤 떨어진 곳으로 76년 전에는 이곳까지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목숨을 잃은 주민들은 중산간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해안가로 쫓겨나온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표선면 가시리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1958년 11월 중순, 토벌대 군인들이 마을을 덮쳐 주민들을 공격해 수십명이 숨졌다. 남은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해안가 마을로 소개(분산이동)됐고 당시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다. 군인과 경찰은 각 집마다 호적을 대조하며 가족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처형 대상이 됐다. ‘도피자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여서다.
표선에서 만난 4·3해설사는 “당시 가시리 마을엔 360여 가호에 1600여명쯤 살았는데 희생된 사람만 4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때 마을은 폐허가 돼 방치됐다가 1950년부터 마을 재건 사업이 이뤄졌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면서 지금처럼 동네를 이루게 됐다. 현재 가시리에는 670여가구가 살고 있는데, 제주 원주민은 300여가구쯤 되고 나머지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사무소. 4.3사건 당시엔 가시국민학교로 쓰던 건물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가시리 일대의 4.3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가시마을 4.3길’이 조성돼 있다. [박준규 기자]
이날 기자를 포함한 일행을 안내한 양성주 대표는 2021년부터 제주다크투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의 역사와 기억할 장소를 소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역시 4·3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다. 할아버지가 난리 당시에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는데,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는 “오랫동안 제주의 4월은 침묵의 봄이었으나 ‘순이삼촌’ 같은 문학작품이 나오면서 서서히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4·3을 다룬 작품의 노벨상 수상이 주는 힘은 1000배는 강력하다”고 말했다.
[제주4.3사건]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경찰 발포로 도민들이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와 그 이후 약 6년 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군경(토벌대)과 무장대의 무력충돌 및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미군정과 1948년 8월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의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무력 진압을 펼쳤다. 그해 11~12월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토벌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 2만5000~3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 규모다. 이 사건은 이어진 군사정권에서 ‘잊혀진 역사’였으나, 1980년 후반 민주화 이후 관련 논의가 급격히 진행됐다. 1999년 말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4.3사건의 성격 규정이나 역사적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공식 명칭은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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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표선읍 한모살. 4.3사건 때 중간산 마을에서 군인들에게 떠밀려 해안가 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이 총살당했던 공간이다. 쓰러진 시체는 바다에 던져 버렸다. 4.3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없다면, 그저 비어있는 땅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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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이삼촌’ 표지
[헤럴드경제(제주·서귀포)=박준규 대학생 기자] 4·3사건에서 중산간 일대 주민들이 많이 희생됐지만 사태가 진행될수록 바닷가 마을도 큰 상처를 입었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가 대표적인 동네다. 이곳은 지금 ‘너븐숭이 4·3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너븐숭이는 ‘넓은 바위가 있는 곳’을 뜻한다. 마을주민들이 밭일을 하다가 한숨 돌리던 공간이었다.
북촌리 너븐숭이에선 1949년 1월, 주민 46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일이 터지기 얼마 전 북촌리와 이웃한 구좌읍 동복리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토벌대는 보복을 명분으로 애꿎은 북촌리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모이게 한 뒤 학살했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마을사람들의 시체가 일주도로 주변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란 뜻)에 널렸다고 한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은 이 북촌의 비극을 모티브 삼아 쓴 소설 ‘순이삼촌’을 1978년 발표했다. 마을 대부분이 불에 타고 이웃들이 한날에 목숨을 잃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썼다. 정부는 지난 2008년 북촌리 땅 일부를 매입해 ‘순이삼촌 문학비’를 세웠다. 비석들이 땅바닥에 모로 쓰러진 형태로 조성된 공간이다. “학살 당시 숨진 피해자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양성주 대표가 말했다.
1949년 1월 북촌리 대학살이 벌어진 조천읍 북촌리의 한 옴팡밭. 이곳에서 집단으로 목숨을 잃은 주민들을 기리는 비석들이 놓여 있다. 쓰러진 주민을 상징한다. [박준규 기자]
당시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어린이나 갓난아기들이 묻힌 ‘애기무덤’도 옆에 있다. 간신히 살아남은 주민들은 어른의 시신은 수습해 다른 곳에 안장하고 아이 시신은 임시 매장 형태로 뒀다. 그 상태로 수십년이 지나서 20여기의 무덤군(群)이 됐다. 양 대표가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대학살에서 희생된 어린이가 묻혔다”고 말할 때 학생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북촌리 애기무덤. 1949년 초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 때 사망한 어린 아이들을 임시 매장한 묘다. 20여기의 무덤이 있다. [박준규 기자]
서귀포 백사장의 비극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제주의 실제 동네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는 대신 ‘P읍’이라고 적었다. 이곳은 서귀포 표선읍으로 알려졌다. 4·3사건 때 제주의 남쪽에서도 희생자들이 잇따라 나왔다. 표선읍에서도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됐다.
그럼,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어.
<작별하지 않는다> 중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백사장은 ‘한모살’을 일컫는다. 표선도서관 바로 옆, 지금은 들풀만 가득한 공터다. 표선해수욕장에서 50m쯤 떨어진 곳으로 76년 전에는 이곳까지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목숨을 잃은 주민들은 중산간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해안가로 쫓겨나온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표선면 가시리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1958년 11월 중순, 토벌대 군인들이 마을을 덮쳐 주민들을 공격해 수십명이 숨졌다. 남은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해안가 마을로 소개(분산이동)됐고 당시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다. 군인과 경찰은 각 집마다 호적을 대조하며 가족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처형 대상이 됐다. ‘도피자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여서다.
표선에서 만난 4·3해설사는 “당시 가시리 마을엔 360여 가호에 1600여명쯤 살았는데 희생된 사람만 4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때 마을은 폐허가 돼 방치됐다가 1950년부터 마을 재건 사업이 이뤄졌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면서 지금처럼 동네를 이루게 됐다. 현재 가시리에는 670여가구가 살고 있는데, 제주 원주민은 300여가구쯤 되고 나머지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사무소. 4.3사건 당시엔 가시국민학교로 쓰던 건물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가시리 일대의 4.3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가시마을 4.3길’이 조성돼 있다. [박준규 기자]
이날 기자를 포함한 일행을 안내한 양성주 대표는 2021년부터 제주다크투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의 역사와 기억할 장소를 소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역시 4·3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다. 할아버지가 난리 당시에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는데,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는 “오랫동안 제주의 4월은 침묵의 봄이었으나 ‘순이삼촌’ 같은 문학작품이 나오면서 서서히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4·3을 다룬 작품의 노벨상 수상이 주는 힘은 1000배는 강력하다”고 말했다.
[제주4.3사건]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경찰 발포로 도민들이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와 그 이후 약 6년 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군경(토벌대)과 무장대의 무력충돌 및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미군정과 1948년 8월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의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무력 진압을 펼쳤다. 그해 11~12월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토벌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 2만5000~3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 규모다. 이 사건은 이어진 군사정권에서 ‘잊혀진 역사’였으나, 1980년 후반 민주화 이후 관련 논의가 급격히 진행됐다. 1999년 말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4.3사건의 성격 규정이나 역사적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공식 명칭은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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